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사태 이후 한국 사회는 전례 없는 혼란에 빠졌다. 특히 서울서부지법에서 발생한 극우 세력의 폭동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이 문형배 헌법재판관의 자택 앞까지 찾아가 의도적으로 이웃들을 괴롭히는 행태를 보인 점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시위를 넘어 개인의 사적 영역을 침해하는 명백한 폭력 행위였다.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근무하는 시민들은 일상적인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한 시민의 증언에 따르면, 극우 시위대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재명, 시진핑, 김정은을 비난해보라"고 강요하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 위협한다고 한다. 문형배 재판관의 자택 앞에서는 차량으로 귀가하려는 이웃이 시위대에 방해를 받자 경적을 울렸다가 "빨갱이"라는 욕설과 함께 위협을 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행태가 충격적인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정치적 이념 때문만이 아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사회적 규범과 예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들의 평판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상호작용론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이들 극우 세력은 이러한 사회적 규범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오히려 그것을 자신들의 무기로 활용한다.

 

이들은 매우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규범에 따라 올바르게 처신하여 사회적 평판을 얻는 것이 자신들에게 실익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평판을 무시하기로 결정한 순간 자신들을 제재할 법적 장치가 미약하다는 것을 말이다. 원래 이 영역은 법적 제재보다는 사회적 압력으로 규율되는 영역인데, 사회적 압력에 전혀 개의치 않으니 통제 수단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공공장소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 사례로, 광역버스에서 한 남성이 옆자리에 앉은 승객의 공간을 의도적으로 침범하며 결국 그 승객을 자리에서 쫓아내는 상황이 있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뒤로 간다"고 대답한다. 이는 단순히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무서워져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공포에서 비롯된다.

 

처신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상대가 처신에 신경 쓰지 않을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상호작용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존중에 대한 기대와 내가 택한 행동 방식에 대한 상대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가 이를 완전히 무시할 때, 처신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결국 그 공간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서 공공장소는 점점 더 '처신'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반대로 처신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사라진다. 그 결과 공공장소는 점차 '슬럼화'되고, 사회의 공공 영역이 붕괴되는 현상이 가속화된다. 한국의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가 점차 황폐해지는 현상은 이미 피부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공공 영역의 슬럼화가 진행될수록 '빌런'들의 효능감이 극대화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례한 행동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더욱 대담해진다. 버스에서 옆자리 승객을 밀어내고 두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현재 한국의 극우 세력들에게서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빌런 효능감'이다. 그들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점령하고, 광화문을 넘어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와 광주 금남로까지 진출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한다. 이들에게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핵심인 '처신'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효능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런 '빌런'들의 효능감을 법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다. 법과 정치가 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시민들이 무력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법과 정치가 사회를 보호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